근현대 일본의 외교 (2) : 개국과 쇄국의 갈림길 > 학습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학습자료실

근현대 일본의 외교 (2) : 개국과 쇄국의 갈림길

profile_image
구본웅
2023-10-03 14:24 706 0

본문

3. 서구의 통상 요구와 도쿠가와 막부

  1800년을 전후로 유럽과 미국의 포경선, 상선, 군함이 불안감을 조성할 정도로 빈번히 일본 해역에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일본에 대한 여러 가지의 요구사항 또한 그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서구 선박의 출현은 일본에게 있어서 심각한 위기의 상황이었다. 수 십년에 걸쳐서 도쿠가와 막부는 내부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쇼군과 다이묘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에 대하여 농민과 무사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재정위기까지 겹치면서 도쿠가와 막부는 이중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러시아, 미국 등의 서양 국가들의 통상요구는 도쿠가와 막부 체제의 정당성까지 흔들 만큼의 대위기가 되었다.

  근현대에 들어서 서구가 일본에 관심을 보인 첫 순간은 1780년대 러시아가 극동연안, 즉 지금의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에 당도했을 때이다. 러시아는 연안의 수역을 탐사하고 해도를 작성했으며, 동시에 사할린 섬과 쿠릴열도 그리고 홋카이도의 교역로를 개척했다. 러시아 상선은 이 루트를 통해 막부와 접촉하고 막부에 교역을 위한 편의 제공을 요청했지만 막부는 거절해왔다. 이런 종류의 요구들은 이후 꾸준히 그리고 점진적으로 거세졌다. 러시아는 점차 무력을 동원하기 시작했고 1806~1807년 사이에는 러시아 해군이 홋카이도와 사할린 등 일본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공격을 가하기도 하였다.

  일본과 상관없는 두 국가 간의 분쟁이 일본에서 일어나기도 하였다. 1908년에는 영국 군함 페이턴 호가 나가사키에 입항해 네덜란드의 출장소인 네덜란드 상관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하였다.1). 1818년에는 한척의 영국 선박이 에도 근처의 우라가(浦賀) 만에 들어와 무역허가를 요구했지만, 막부는 그것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막부는 외국선박의 내항에 대응하기 위해 1825년 강도 높은 쇄국정책 안을 내놓기에 이른다. 일본 연안의 다이묘들에게 일본 연해에 접근하는 모든 외국선박을 무력으로 쫓아낼 것을 명령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 상선 모리슨 호가 1937년에 무역허가를 요구하며 우라가(浦賀)에 기항했을 때, 피해는 없었지만, 대포 포격이라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무력 대응을 겪었다. 1844년 네덜란드인이 오랫동안 교역의 거점으로 삼고 있던 나가사키에 네덜란드 국왕 빌렘 2세가 정중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 내용에는 세계가 이미 변했고 일본도 이제 서양열강이 지구 전역으로 확대하고 있는 통상망과 외교질서에 관련되지 않은 채 무사태평으로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편전쟁을 통해 서구의 무력을 통한 개국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알고 있던 도쿠가와 막부는 고민에 빠졌다. 막부 의 수석 로주(老中, 정무통감)였던 미즈노 다다쿠니는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일본에 대한 경고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도쿠가와 막부는 결국 미래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시급히 서구 각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여 개국해야 한다는 네덜란드의 권고를 정중히 거부했다.
 

4. 개국과 쇄국의 갈림길 그리고 불평등 조약

  일본에게 있어서 아편전쟁은  서양은 정복과 이익획득을 노리는 탐욕스러운 약탈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도쿠가와 막부 또한 이를 근거로 쇄국 이라는 기본 방침을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도쿠가와 막부는 네덜란드의 제안을 거절하고 쇄국 정책을 유지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정책변화를 시도했다. 1942년 막부는 외국선박에 대해서 포격을 가해야 한다는 1925년 외국선박추방령을 완화하고 일본 해역에 표류해온 서구의 배에는 물과 식량을 제공하고 분란 없이 돌려보내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거기에 내셔널리즘을 주장하는 개혁가들의 제안도 부분적으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쇄국을 통해 서양을 막기 위해서는 막부와 각 번의 방위체계가 정비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에 근본적으로 서양을 위협적인 존재로 만들어준 서양의 기술을 수입해야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도쿠가와 막부가 이러한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본격적으로 개항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미국 페리 제독의 일본 방문이 결정적있다. 1853년 미국의 메슈 페리 제독이 일본 연안에 내항했다. 페리 제독은 평화적으로 교역에 응하던가 혹은 교역을 거부하고 전쟁을 감수하던가의 양자선택을 도쿠가와 막부에 강요했다. 이러한 강경한 태도는 지난 수년 간 막부에 개항과 교역을 요구해왔던 다른 서양 세력들의 강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페리 제독은 1853년 6월 일본을 떠날 때 다음해 방문 하였을 때는 더 큰 규모의 함대를 끌고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 메시지는 에도 일대의 일본인들을 동요시켰고 막부는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조치를 강구해야만 했다.

  1894년 페리는 일본에 다시 내항하였고, 이 때 미국은 증기기관을 갖춘 프리깃 함 세척을 포함하여 아홉 척의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일본을 찾아왔다. 막부는 시모다(下田)와 하코다테(函館)에 미국 선박이 개항하는데 동의했다. 또한 시모다에 영사를 두는 권리 또한 미국에 부여했다. 이 가나가와(神奈川) 조약(미일화친조약)의 내용은 잇달아 유럽의 열강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러시아 사이에서 맺은 조약에도 적용되었다. 막부의 이런 조치는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통상을 위해서 내놓은 것이 아니었지만, 서양 열강들은 일본에 대하여 즉시 권리행사에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초대 총영사 타운센드 해리스는 1986년 이즈 반도 남단에 있는 시모다에 영사관을 열고 영사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해리스는 또한 곧바로 도쿠가와 막부에 영국이 뒤이어 더 심한 요구를 할 것이라며, 진실성을 띈 협박을 하며 미국과의 수호통상조약 체결을 권유했다. 또한 이 수호통상조약이 다른 열강과의 통상조약의 본보기가 되어 줄 것이라며 설득했다.

  결국 도쿠가와 막부는 1858년 6월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영국과 맺었던 난징조약과 별 차이가 없는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막부 입장에서는 국내의 반대파의 존재와 반발을 우려했으나 더 나은 선택지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전쟁을 일으키기엔 승산을 물론, 이익이 될 수 없었으며, 다른 열강들이 훨씬 더 강경하고 심한 요구를 해올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미일수호통상 조약에 따라 8개 항구가 개항되어 대일(對日) 무역이 인정되었다. 특히 조약 내용에서 눈여겨 봐야할 부분은 일본이 관세자 주권과  조약에 명시된 항구에 대한 법적 관할권을 양도했다는 것이다. 즉 일본에 유입되거나 일본에서 유출되는 재화에 대한 관세는 조약에 의해 설정되며일본 정부에게는 그 관세를 자주적으로 변경할 권한이 없게 된 것이다. 또한 일본 국내에서 범죄를 저질러 고소당한 외국인에 대해서는 외국의 법의 적용을 받아 영사재판소에서 외국인 재판관이 주재하는 판결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즉, 치외법권이 적용된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다른 서양열강들과의 조약에서 똑같이 적용되어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런 불평등 조약의 존재는 표면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일본에게 굴욕적이었다. 무수히 많은 범죄들이 처벌 된다하여도 가벼운 벌을 받았으며, 1870년대부터 1880년대에 걸쳐 강간이 처벌되지 않고 넘어간다던가, 강제외설이 용서된 부당한 조치들이 잇달아 발생하였고, 일본 전역에 보도되었다. 즉, 일본의 자존심에 상처가 되고, 또한 일본의 주권이 침해되는 사례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불평등조약이 계기가 되어 일본의 내셔널리즘2)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막부 관료들 사이에서 또한 정치에 관심 있는 하급계층 무사들 사이에서는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토론을 통해 일본을 하나의 국가로 보고, 하나의 통일체로서 방위되고 통치되어야 한다는 공통된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동시에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의 정당한 지도자라는 인식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주석>
1). 당시 네덜란드는 나폴레옹 전쟁을 겪으면서 영국과 적대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2). 민족주의로도 표현될 수 있으며, 민족 단위의 국가 형성과 외세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는 사상적 조류를 일컫는다.


--


[참고문헌]
이오키베 마코토, 조양욱 역, <일본외교 어제와 오늘>, 서울: 다락원, 2002.
이리에 아키라(入江昭), 이성환 역, <일본의 외교>, 서울: 푸른산, 2001.
앤드류 고든(Andrew Gordon), 김우영, 문현숙 역, <현대 일본의 역사 1>, 서울: 이산, 2015.
앤드류 고든(Andrew Gordon), 김우영, 문현숙 역, <현대 일본의 역사 2>, 서울: 이산, 2015.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