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일본의 외교 (1) : 근대 일본의 시작과 일본 외교
구본웅
2023-10-0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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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근대 일본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
일반적으로 근대란 마린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시작하여 1·2차 세계대전의 종전 즈음까지를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다. 또한 여기서 중세와 가까운 시기와 현대와 가까운 시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전자는 근세로 후자는 근대로 보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근세는 르네상스 시대를 지칭하게되며, 근대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2차 세계대전 까지를 지칭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유럽의 기준을 따르며 아시아에서의 근대는 조금 다르게 표현된다. 한국에서는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나는 시기까지를 보통 근대로 간주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일본의 근대의 기점을 메이지 유신(1868)으로 보고있다. 독특한 점은 일본의 근대의 시작이 유럽에서 처럼 시민의 권리 증진과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도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1853년 7월 8일 미국의 메튜 페리 제독이 미국 함선 4척을 이끌고 일본 우라가 항(現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 시)에 입항하였다. 이 때 메튜 페리 제독은 일본 에도 막부에 대하여 개항을 요구하면서 무력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쿠로후네 사건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러한 개항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 함선의 무력 시위로 인하여 일본의 에도 막부는 결국 개항과 통상조약을 맺기 시작했다. 1854년 3월 미일화진조약에 이어 19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이 개항하기 시작했다.
개항에 대한 여러가지 설을 많으나, 미국의 무력시위에 따른 공포로 인하여 개항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특히 미국의 영사 재판권을 인정하는 부분이나 무역에 대한 일본 관료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조항을 볼 때 불평등조약이라는 평가가 어울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당시 일본의 지도자 세력이었던 에도 막부는 서양에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반 막부 세력과 왕정 복고 세력에 의하여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1967년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부터 시작된 이에야스 가문의 에도 막부는 당시 일본 천황 메이지 덴노에게 정권을 반납하고 말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반 막부 세력과 왕정복고 세력의 막부 타도 운동이 있었다. 이들은 존왕양이, 즉 왕을 받으러 외세를 물리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왕정복고를 추진하였다. 그 과정중에 미국와 영국 등의 세력과 맞붙게 되면서 서구의 압도적인 국력차를 인식하게 되었는데, 결국 왕정복고라는 커다란 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개항을 통한 국력신장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결국 메이지 유신이 가져온 변화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치적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어냈다. 기존의 천황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이에야스 가문이 대리 통치하는 막부체제가 붕괴하고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왕정 혹은 제정이 갖추어 졌다는 점이다. 둘째, 사상적으로 쇄국이 아닌 개항을 통해 산업화를 추진했다는 점이다. 천황을 중심으로 정치체제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사상적으로 쇄국을 추진하던 세력들이 서구 세력의 압도적인 국력차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서구의 것을 받아들여 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인식을 확실히 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전면 개방을 이루게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메이지 유신 전후로 하여 일본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메이지 유신을 일본의 근대의 시작으로 보게된 이유가 된 것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결국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2. 근대 일본의 외교를 보는 관점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이리에 아키라(入江昭)에 따르면 한 국가의 외교 방침은 그 나라의 국민이 세계정세를 보는 시각과 관점에 기반을 둔다고 하였다. 20세기 초 영국의 외상 에드워드 그레이(Edward Grey)는 미국과 아시아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그는 미국인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외교문제와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관점을 알고자 했다. 결국 근대 시기에 이르러서 외교란 단순히 정책 지도자의 정책이나, 사상가나 정치가의 주장에 국한되지 국한되지 않는다. 한 국가 전반에 깔인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와 그 국가의 방향성을 보아야만 한다.
본 글은 근현대의 일본 외교의 흐름을 간략히 정리하고 소개하고자 쓴 글이다. 다만 일본 외교 전반을 논하거나 개론하는 교과서라고 보기에는 한계를 지닌다. 그저 근현대의 일본 외교의 시작과 배경을 살펴보고 흐름을 파악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있다. 또한 단순한 일본의 정치가나 외교관 혹은 사상가의 소개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일본의 외교를 논하기 위해 일본 사회와 정치 전반을 다루면서 추가적으로 정치가와 외교관, 사상과 정책 등을 보조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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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리에 아키라(入江昭), 이성환 역, <일본의 외교>, 서울: 푸른산, 2001.
앤드류 고든(Andrew Gordon), 김우영, 문현숙 역, <현대 일본의 역사 1>, 서울: 이산, 2015.
앤드류 고든(Andrew Gordon), 김우영, 문현숙 역, <현대 일본의 역사 2>, 서울: 이산, 2015.
일반적으로 근대란 마린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시작하여 1·2차 세계대전의 종전 즈음까지를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다. 또한 여기서 중세와 가까운 시기와 현대와 가까운 시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전자는 근세로 후자는 근대로 보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근세는 르네상스 시대를 지칭하게되며, 근대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2차 세계대전 까지를 지칭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유럽의 기준을 따르며 아시아에서의 근대는 조금 다르게 표현된다. 한국에서는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나는 시기까지를 보통 근대로 간주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일본의 근대의 기점을 메이지 유신(1868)으로 보고있다. 독특한 점은 일본의 근대의 시작이 유럽에서 처럼 시민의 권리 증진과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도입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1853년 7월 8일 미국의 메튜 페리 제독이 미국 함선 4척을 이끌고 일본 우라가 항(現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 시)에 입항하였다. 이 때 메튜 페리 제독은 일본 에도 막부에 대하여 개항을 요구하면서 무력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쿠로후네 사건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러한 개항을 목적으로 하는 미국 함선의 무력 시위로 인하여 일본의 에도 막부는 결국 개항과 통상조약을 맺기 시작했다. 1854년 3월 미일화진조약에 이어 19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본격적으로 일본이 개항하기 시작했다.
개항에 대한 여러가지 설을 많으나, 미국의 무력시위에 따른 공포로 인하여 개항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특히 미국의 영사 재판권을 인정하는 부분이나 무역에 대한 일본 관료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조항을 볼 때 불평등조약이라는 평가가 어울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당시 일본의 지도자 세력이었던 에도 막부는 서양에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반 막부 세력과 왕정 복고 세력에 의하여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1967년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부터 시작된 이에야스 가문의 에도 막부는 당시 일본 천황 메이지 덴노에게 정권을 반납하고 말았다. 이러한 배경에는 반 막부 세력과 왕정복고 세력의 막부 타도 운동이 있었다. 이들은 존왕양이, 즉 왕을 받으러 외세를 물리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왕정복고를 추진하였다. 그 과정중에 미국와 영국 등의 세력과 맞붙게 되면서 서구의 압도적인 국력차를 인식하게 되었는데, 결국 왕정복고라는 커다란 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개항을 통한 국력신장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결국 메이지 유신이 가져온 변화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치적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어냈다. 기존의 천황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이에야스 가문이 대리 통치하는 막부체제가 붕괴하고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왕정 혹은 제정이 갖추어 졌다는 점이다. 둘째, 사상적으로 쇄국이 아닌 개항을 통해 산업화를 추진했다는 점이다. 천황을 중심으로 정치체제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사상적으로 쇄국을 추진하던 세력들이 서구 세력의 압도적인 국력차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서구의 것을 받아들여 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인식을 확실히 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전면 개방을 이루게된 계기가 되었다.
결국 메이지 유신 전후로 하여 일본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메이지 유신을 일본의 근대의 시작으로 보게된 이유가 된 것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결국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2. 근대 일본의 외교를 보는 관점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이리에 아키라(入江昭)에 따르면 한 국가의 외교 방침은 그 나라의 국민이 세계정세를 보는 시각과 관점에 기반을 둔다고 하였다. 20세기 초 영국의 외상 에드워드 그레이(Edward Grey)는 미국과 아시아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그는 미국인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외교문제와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관점을 알고자 했다. 결국 근대 시기에 이르러서 외교란 단순히 정책 지도자의 정책이나, 사상가나 정치가의 주장에 국한되지 국한되지 않는다. 한 국가 전반에 깔인 국제정세에 대한 이해와 그 국가의 방향성을 보아야만 한다.
본 글은 근현대의 일본 외교의 흐름을 간략히 정리하고 소개하고자 쓴 글이다. 다만 일본 외교 전반을 논하거나 개론하는 교과서라고 보기에는 한계를 지닌다. 그저 근현대의 일본 외교의 시작과 배경을 살펴보고 흐름을 파악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있다. 또한 단순한 일본의 정치가나 외교관 혹은 사상가의 소개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일본의 외교를 논하기 위해 일본 사회와 정치 전반을 다루면서 추가적으로 정치가와 외교관, 사상과 정책 등을 보조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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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이리에 아키라(入江昭), 이성환 역, <일본의 외교>, 서울: 푸른산, 2001.
앤드류 고든(Andrew Gordon), 김우영, 문현숙 역, <현대 일본의 역사 1>, 서울: 이산, 2015.
앤드류 고든(Andrew Gordon), 김우영, 문현숙 역, <현대 일본의 역사 2>, 서울: 이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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